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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보고서

[예술] 게임은 예술인가?

위에서 명명한 게임은 비디오 게임에 한정하여 이야기 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1.예술의 정의

"게임이 예술인가?" 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 이전에 우리는 거시적으로 "예술이 무엇인가" 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예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쉽게 대답할 수 없을것이다. 이글을 적고 있는 나자신도 예술이 무엇이냐고 명확하게 정의해보라고 한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것이다. 그만큼 무언가를 정의하는것은 힘들고, 특히 비이성적며 동시에 추상적이기 까지 한 예술을

논리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모순이자 비약이다. 

구글에 예술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에서 정의하는 예술은 무엇이가를 찾아볼 수 있을것이다. 위에 이미지에는 본다면 
 

예술은 학문·종교·도덕 등과 같은 문화의 한 부문으로,
예술 활동(창작, 감상)과 그 성과(예술 작품)의 총칭이다.

 
라고 정의 되어있다.  이를 쉽게 이념의 실체화라고 생각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념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념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단순하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자연을 어떤식으로 대해야 하는가?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개개인 혹은

집단의 생각을 우리는 이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래의 명제로 돌아가서 게임은 과연 이념의 실체화라는 예술의 정의에 부합할수 있는가?

 

2.게임은 예술이 아니라는 로저 이버트의 의견

https://www.rogerebert.com/roger-ebert/video-games-can-never-be-art

 

Video games can never be art | Roger Ebert | Roger Ebert

Having once made the statement above, I have declined all opportunities to enlarge upon it or defend it. That seemed to be a fool's errand, especially given the volume of messages I receive urging me to play this game or that and recant the error of my way

www.rogerebert.com

위에 글은 미국의 영화 평론가인 로저 이버트의 "비디오 게임은 절때 예술이 될수 없다"라는 글이다.
내가 이글을 인용하는 까닭은 이글의 내용이 단순 "문학과 영화는 고상하고 게임은 수준이 낮다" 등에 편협한 내용이

아닌 게임에 본질을 꿰뚫는 글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문을 읽어본다면 로저 이버트의 게임의 대한 견해가 매우 얕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가 게임과 관련된 인물이 아니라는 점 또한 감안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글을 단순히 "게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영화 평론가가 게임계를 공격했다" 라는 관점으로 이글을 보는것이 아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게임은 예술 될 수 없다"라는 메시지를 중점으로 보아야한다.


 

"그는 게임과 예술의 가장 명확한 차이점은 게임은 이길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했다.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이 있고, 그가 말하고 싶은 의도를 반영하여 본질적으로 표현한다면, 게임 특유의

주체성 때문에 게임은 예술이 될수 없다고 이야기 하는것 같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예술은 이념의 실체화라고 했다.

그렇다면 유저가 주체적으로 주도하는 게임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또한 게임은 특유에 루돌로지

(유희성)를 추구하기 위한 요소들이 이념과는 거리가 멀며 단순 유희를 추구하는것이 어떻게 미적 아름다움을

충족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부분을 본다면 그는 예술성이 떨어지는 게임을 비판한것이 아닌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를 예술이 아님으로
규정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게임이 본질적으로 가진 규칙, 목표, 결과 등은 원시적 학습에서 비롯된 생존적

행위이지 미적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비슷하게 칸트도 생식적 욕구

(식욕, 성욕, 물욕)에 국한되어 발화되는 감정적 동요를 통해 느끼는 미적 아름다움은 그릇된 미라고 주장하며

이를 미적 무관심성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을 명료하게 요약한다면 게임은 규칙, 목표, 결과로 귀결되는 원시적 학습이 본질인 생존적 행위를 닮아있다. 
이러한 본능적 행위는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며, 본디 게임은 본질적으로 플레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념의 실체화로 정의되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는것이다. 창작자가 자신의 이념을 실체화
하여 게임속에 담더라도, 유저가 주체적으로 주도하며 진행하는 게임은 결국 예술가의 이념을 곡해시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게임은 산문, 명화, 영화와 같은 예술이 아닌 체스와 같은 그져 놀이라는것이다. 

 

유명 게임개발자는 코지마 히데오는 게임이 꼭 예술일 필요는 없다며 로저 이버트의 의견에 공감하였다.

그는 추가로 "예술은 100명 중 1명의 사람에게만 감명을 줘도 가치를 인정받지만, 게임은 100명의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려는 일종의 서비스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라 하였다.

 

3.나의 생각 정리

로저 이버트의 의견은 흥미롭게 보았으며 동시에 그가 던진 게임의 의문점은 게임계에 종사하는 인물이라면 한번쯤은

깊게 사유할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 라는 그의 입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게임은 그저 이전의 낡은 방식의 개념으로 분류하기 모호한 새로운 방식에 예술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한번 들어보자

반교

위에 보이는 게임은 반교라는 게임이다. 반교는 대만 계엄령 시기에 벌어진 백색태러의 비극을 현실성 있게 다룬다.

반교라는 게임을 예시로 들게된 이유는 반교라는 게임이 주제와 메시지를 주목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반교가 전달

하려는 메시지 또한 훌륭하지만 그것보다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반교에 메시지 전달 방식이다.

 

https://youtu.be/TJy3fBub7-s?si=gzwAdpbSQlkFSdwX&t=3778

1:02:58~1:06:19 부분을 시청해주시면 이해가 편할것 입니다.

게임이 산문과 영화에 비해 메시지 전달이 어렵다는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게임이라는 문화에 특성상 메체에서 전달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드리기 보다는 유저가 주체적으로 관여하고 결정한다. 물론 선형적인 게임들이 

존재하지만 게임에 본질인 자유로운 상화작용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다. 결국은 본질적으로 게임이라는 메체 자체가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을수 있다.

 

앞서 말한것 처럼 게임이라는 메체는 유저가 이성적 사유를 하게 만드는것이 산문이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게임이 지닌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게임이 가진 주체성은 유저를 극으로 집어넣고 산문과 영화 보다 더한

몰입감을 재공한다. 영화는 인물이 사건을 해결하는것을 관찰자에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게임은 인물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 덕분에 게임은 산문,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정적 동요를 불러오기 어려울 수

있어도 감정적 동요를 불러오기만 한다면 동요에 정도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게임이 지닌 상호작용이라는 특성을 잘 활용한다면 전달력은 약하되, 강한 호소력을 지닌 특정 상황에서

산문과 영화를 뛰어넘는 이념을 전달할 수 있다 생각한다.

 

 

4.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

기술이 발전하며 게임은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 및 시각적인 표현방식을 영화를 모방하곤 하였다. 이런 방식은 게임만이

가진 상호작용이라는 특수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것은 물론이고, 영화에 비해 표현방식 또한 비효율적이다. 

 

왜냐하면 게임이 가진 놀이(상호작용)와 서사(정보전달)는 명백한 배반관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게임의 구조속 서사와 놀이 분명히 구분되어있다. 서사가 전계된다면 놀이가 중단되고, 놀이가 진행된다면 서사 전계가

중단된다.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은 크게 2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로는 영상을 통한 정보전달이고, 둘째로는 문자를 통한

정보전달이다. 영상을 통한 정보전달은 흔히 컷씬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경우 유저는 게임에게 주체성을 

빼앗긴 채로 수동적으로 게임에서 재공하는 정보를 받아드려야 하는데 전달하는 정보가 흥미롭지 않다면 유저는

이러한 상황에 큰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소설에서 시나리오는 전달하려는 목적 그자체로 소설이라는 메체는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한다. 영화 또한 표현

방식에서 시각적인 방향성이 추가되었을 뿐 시나리오의 목적 자체는 동일하다. 반면 게임은 유저의 행위(상호작용)를

통해 생기는 결과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성취감이 게임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간단하게 소설과 영화는 정보전달(시나리오 전계)를 목표로 하지만 게임은 유저에 행위유도 그리고 행위에 대한 

결과표현하는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기에 게임에서 마치 소설과 영화와 같은 에 형태로 서사를 전계하는것에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게임에서 서사가 가진 제 1의 목표가 존재하는데 소설과 영화처럼 무리하게 극에 형태로 전달하고자 하여 정보량을

과도하게 늘린다면, 진행이 늘어지고 복잡해지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삼국지, 왕좌의 게임, 반지의 제왕 같은 장편소설

또한 겪는 문제이며, 이런식으로 단순 정보량을 늘리는것으로는 게임에 서사성을 보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게임에는 게임만에 새로운 방식에 서사 전계법을 연구해야 한다는것이다.

 

 

5.마치며

나 또한 게임 기획자로서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작금에 게임들을 본다면 이러한 본질적인 연구를 진행하는지 의문이 들정도로 "영화적인"이라는 타이틀에

집착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영화같은 게임을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는 않지만 게임이라는 메체에 대한 본질적인 연구

보다는 기존에 있는 영화에 요소를 대거 차용해 규모를 무리하게 늘려나가는 과정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았다.

 

그렇지만 게임에 본질은 플레이고 서사는 부과적인 요소라는것은 변함이 없다.

과거 서사는 그 플레이에 당위성을 부여해주던 단순 설정에 국한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하나에 극을 구성하고 본질적으로 기존 예술이 도전하던 세계를 변화하기 위한 메시지를 던진다.

 

나는 게임을 사랑한다.

하지만 게임이 예술로서 완전히 인정받기에는 위와 같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 보다 더 경계 해야하는 것은 이러한 본질적인 연구와 사유없이 

무비판적으로 "게임은 당연히 예술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대가 지나며 게임을 즐기는 세대가 많아짐에 따라 사회는 점차 게임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것이다.

게임이 이런식으로 인정 받는것이 아닌 게임개발자들에 연구에 의해 본질적으로 게임에 필요한 작법을 가지고

게임이라는 독창적인 문화예술로서 모두가 인정하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게임이 가진 루돌로지와 네러톨로지를 적절히 조합한 게임을 만들고 싶으며 꼭 해내고야 말것이다.

 

게임을 만드는 게임개발자라면 그리고 당신이 이 문화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연구하고, 기존에 존재하는것들에 비판적인 사고로 바라보며

동시에 다른 매체들을 이해하며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게임이 가진 루돌로지와 네러톨로지를 적절히 조합한 게임을 만들고 말것이다.